사춘기 냄새 풀풀 나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구병국 선생의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 수업에 진지한 모습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구 선생는 ‘외국인들이 화장실을 쉽게 찾으려면 어떤 비주얼 사인이 좋을까’를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학생들은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 좌석 기호들을 나름대로 정해서 그려냈다. 30분 뒤 구 선생는 학생들의 그림을 하나씩 검토하며 장단점을 짚어주고는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이 사고를 풀어내는 과정에 구 선생은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문민우(2학년) 학생은 “그림으로 추상적인 생각을 표현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다음에 할 땐 그림자 등 좀 더 자세한 부분을 잘 표현해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인천에 있는 인천해양과학고등학교를 찾아 구병국 선생과 학생들을 만났다. 장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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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위생과 구병국 선생은 2000년부터 정보통신기술(ICT)를 교육에 접목해 활용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보기술(IT),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배우거나 활용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해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1세기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ICT를 이용한 협업’이 학생들 미래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제가 가르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당장 사회로 나갑니다. 지금 식품위생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게 아이들 인생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디자인싱킹과 ICT를 제과제빵 실습에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인싱킹 수업은 아이들에게 답이 A만 있는 것이 아니라 B,나 혹은 C도 있다는 걸 알게 하죠. 또 이걸 표현하는 방법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기호나 그림 등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ICT는 협업의 도구일 뿐이라는 걸 저나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킵니다. 도구는 끊임없이 바뀝니다. 이를 이용해서 앞으로는 평범한 1만 명이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 학생들을 그렇게 교육하고 싶습니다.”

구 선생이 4년 전 발령받아 온 인천해양과학고등학교는 특성화고등학교다. 또 전원 남학생이다. 특성화고등학교만의  특별한 수업방식은 ‘팀 티칭’이다. 과목마다 주(主)교사와 부교사가 있다. 이번 학기에 ICT를 식품위생 과목에 적용시키고 있는 과목에서 구 교사는 부교사다. 주교사가 제과제빵 본 실습을 진행하고 부교사는 실습 전과 후를 관리한다. 구 선생은 여기에 ICT를 적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의 폐쇄형, 기업용 SNS 야머(Yammer)가 주인공이다.

“저는 부교사로서 실습 전에 학생들이 예습하는 내용을 야머에서 공유할 수 있게 합니다. 버터쿠키를 굽는다고 하면 학생들이 그 과정을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고 업로드하는 것이죠. 실습이 끝난 뒤에는 찍어온 사진들과 작성한 보고서를 야머에서 또 공유합니다. 학생들이 야머에 업로드한 내용들은 지워지지도 않아서 다른 선생님이나 학생들에게 인프라 소프트웨어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학생들이 실습 과정에서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아 빵이 부풀지 않는 경험을 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면 빵을 만드면서 이스트 넣는 걸 잊지 않게됩니다.”

왜 하필 야머일까. 그는 이용 편이성을 들었다. 학생들이 평소에 이용하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와 비슷해 바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제과제빵, 조리 실습을 잘 해내고, 그 과정에서 나온 많은 것들을 ‘야머’라는 협업 서비스에 기록해 놓고 소통을 하면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구 병국 선생은 야머를 시작으로 교사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제품군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야머 다음에는 오피스365(Office365), 원드라이브 포 비즈니스(OneDrive for Business), 쉐어포인트(SharePoint) 순서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쫓기지 않는 학기 초가 여유롭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이런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해볼 수 있죠. 다만 학생들에게는 저만의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건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너희가 사회에 나가면 ICT환경에서 살게 될 거야’라고만 강조합니다.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 이용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죠.”

구병국 선생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 중 이름을 불리는 것조차 낯설어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힌 학생들이라 이름을 불리면 지적당하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수업에서 ICT를 활용하면서 이런 학생들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비결은 야머와 원드라이브 포 비즈니스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처벌-보상 모델을 제공하고 실패의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었다.

“정보통신윤리 교육 과목에는 제가 주교사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원드라이브 포 비즈니스 뉴스피드를 사용하면 모든 의사소통 피드(Feed)가 다 보입니다. 페이스북이 뉴스피드 교류를 많이 한 사람의 포스팅만 보여줘, 학생들이 SNS를 통해 음란물 등을 접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는 다르죠. 야머 역시 폐쇄형으로 학년별로 외부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YCP(Young Cyber Patrol)이라는 역할을 돌아가면서 부여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야머에 욕이나 음란물을 업로드하면 YCP가 경고장을 줍니다. 서로 감시하고 지도하면서 사회적인 에티켓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SNS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미리 실패의 경험을 맛보게 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