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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논의되는 금융권의 핀테크는 산업 규제 완화나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집중돼 있다. 올해 1월 금융위원회가 ‘IT 금융 융합 방안’에서 핀테크 산업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뒤부터 ‘규제만 풀리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터져나오는 이슈고 국내 핀테크 산업이 좀더 활성화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사항이지만 규제만 논하는 게 다는 아니다. 과거 금융권에 IT가 접목됐을 때 어떤 시너지를 냈는지, 국내엔 금융권 인프라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조성됐는지를 거울 삼아 지금 금융권의 핀테크를 조망하기 위해 김경호 하나금융지주 미래금융지원팀 팀장을 만났다. 장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1998~99년도부터 고객들이 인터넷뱅킹을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전자 금융 관련 벤처 회사가 우후죽순 늘어났죠. 지금 그때의 데자뷔(Deja-vu)를 보는 것 같아요. 2009년 말부턴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모바일뱅킹을 이용하는 사용자가 늘었고, 마찬가지로 예전처럼 스타트업도 많아졌으니까요.”

김경호 팀장은 핀테크 열풍을 이렇게 봤다. 금융 지급 결제 분야엔 쭉 IT가 적용돼 왔다. 심지어 그는 금융기관을 ‘IT 집약 회사’라고 이야기했다. 공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PC와 사람 없으면 회사 운영이 어려워서다. 그래서 금융권의 지급결제 프로세스에 IT를 접목하는 핀테크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주제는 아니다. 김 팀장은 다만 지금 미국, 중국 등에서 불고 있는 열풍과 국내 규제 완화 이슈가 맞물려 핀테크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전에도 금융에 IT를 도입한 변곡점들이 있으니 이를 반추해 현재를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용하는 실시간 계좌 이체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실시간 계좌이체가 가능해진 것이 국내 금융 사업을 한단계 변화시킨 포인트였습니다. 이전까진 1980년대 수기전표로 지급 결제를 했습니다. 돈을 보낼 사람이 손으로 직접 문서를 작성해 한국은행으로 가야 했고 여기서 다시 받을 은행의 계좌로 돈을 보낼 문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이후 금융결제원이 종합온라인 시스템을 열어 자행 내 실시간 계좌이체가 가능해졌습니다.”

금융결제원은 국내 지급 결제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인프라를 조성했다. 타행환망을 깔아 서로 다른 은행 간 실시간 계좌이체를 가능케했다. 그뒤 자동화기기끼리 호환이 되도록 CD공동망을 구축했다. 당시 사용자는 실시간 계좌이체를 쓸 수 있었으나 오후 4시까지라는 제약이 있었다. 전자금융공동망은 시간적 제약을 해결하고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인 인터넷을 아울렀다. 비로소 어음교환시스템과 지로시스템,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을 포함하는 네트워크가 생겼다.

“금융결제원이 지급결제 시스템 자동화 인프라를 굉장히 잘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편한 시스템이니까요. 지금 논의되는 핀테크는 전부 이 인프라 위에서 구현되는 거죠.”

김 팀장은 핀테크의 전신을 E-finance로 봤다. 그리고 E-finance를 버전별로 나눴다. 1.0 버전은 자동화기기(ATM) 사이 호환이 가능해진 1980~1990년대 초반으로, 2.0은 인터넷뱅킹이 시작된 1994년부터 90년대 말로 봤다. 김 팀장이 은행에 입사한 건 1994년, E-finance 2.0 시대가 막 도래했을 때였다. 휴대폰뱅킹과 집에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홈트레이딩시스템(HTS)도 이때 시작했다. 금융기관은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고 지급결제가 가능한 멀티채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채널이 여러 개 생기다보니 은행이나 카드사는 예금자 보호를 위해 구매안전서비스(에스크로)를 도입했다. 김 팀장은 2001년 은행 중 처음으로 하나은행에 에스크로를 열었다.

“은행업계에서는 하나은행이 처음 에스크로를 도입했어요. 싸이월드가 에스크로를 요청해서 만들게 됐어요. 이니시스가 당시 PG사였죠. 온라인 결제가 불안하니 사전적으로 방어하는 서비스가 필요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