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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하이텔, 2001년 KTH, 2011년 KT 모바일 사업부를 거쳐 위스캔을 창업하기까지 이태호 위스캔 대표는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Always On)이었다. 그가 20년 동안 온라인에 매달렸던 것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을 내다봤기 때문이었다. 장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시작은 문자메시지였다. 하이텔에서 무선으로 삐삐와 PC통신 연계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러다 SKT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KMT)에서 문자메시지 시스템을 처음 구축하는 일을 함께 했다.

“데이터 통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96년도였어요. 제가 만든 문자메시지 시스템을 프리텔, 그러니까 지금은 KTF죠. 나리텔이 이걸 따라 만들더라고요. 시스템에는 삐삐와 문자를 연동하는 서비스, 생활, 증권 트레이딩 서비스가 포함돼 있었어요. 만든 서비스들이 다 잘나가니, PC통신 중 모바일 분야는 하이텔이 인프라도, 서비스도 업계 1등이었죠.”

하이텔이 KT에 인수돼 'KT하이텔(KTH)'에서 일하게 된 이 대표는 2001년 사내 벤처를 신청하면서 창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인터넷 상시접속 서비스, 즉 'Always On'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 사내벤처를 차린 거죠. 회사 안에서, PC통신 환경에서만 사용할 수 있던 서비스를, 스마트폰 등에 힘입어 상시접속 환경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했고요. 마침 메신저 ICQ도 나왔고 스마트폰이 한국에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그래서 P2P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맨'이라는 메신저를 만들고 그 안에 넣었었죠. 불법으로 접근성을 높이던 소리바다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요. 스토리지 서비스인 '알디스크'도 만들었습니다. 100억원 대 매출을 올렸습니다. 유닉스와 EMC일변도였던 운영체제와 스토리지를, 리눅스와 중저가 제품으로 들여오면서 충돌도 많았지만 저에게 의사결정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성공의 경험이 위스캔을 만든 발판이 됐습니다”

그는 고속승진했다. 2004년 KT 모바일사업 본부장이 됐다. 자리와 상관없이 여기서도 그의 주요 관심사인 인터넷 접속 분야가 효자였다. 휴대폰 메시징 서비스를 운영했고 와이브로 시범 서비스를 구축했다. 모바일 성인 서비스와 채팅 서비스도 시도했다.

“2007년 'N스크린'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KT로 갔습니다. KT는 그때 막 스마트폰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드디어 제가 바라던 '인터넷상시접속' 환경이 만들어진 거죠. 여기에 발맞춰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메신저를 만들었어요.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SMS 수입이 수조원이던 시절이라 메신저 서비스는 사업화될 수 없었어요. 상실감이 컸습니다”

그는 'KT Ucloud' 초기 사업만 마치고 퇴사했다. 한국 데이터, 통신환경 서비스의 역사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쭉 뱉어놓고도 그는 담담했다. 대신 '위스캔' 창업과 '위노트' 이야기를 할 땐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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