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반에선 리코더 소리가 들리고, 운동장에선 공 차기가 한창인 부산 광안초등학교 교정. 여느 초등학교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그런데 3학년 3반에선 좀 다른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실 바닥엔  A4용지가 널려 있고, 그 위에 게임 지도 같은 길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은 둥그렇게 원을 그려 앉았다. 원 밖에선 한 아이가 마이크에 대고 “오른쪽, 왼쪽”을 연발했다. 길 위에 있는 아이는 그 명령어를 따라 움직였다. 무슨 수업이었을까. 장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언플러그드 교육-컴퓨터 없이 프로그래밍 교육하기

조용남 부산 광안초등학교 교사는 이 반 담임 교사다. 분위기를 낯설어 하는 기자에게 그는 “언플러그드 교육을 하고 있다”고 귀띔을 해줬다. 언플러그드 교육은 컴퓨터 없이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교육법이다. 조 교사는 이날 아이들에게 알고리즘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교사는 문제를 내고 이에 따라 아이들은 순서도를 만들어 명령을 내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스크래치를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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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명령어를 줄여보는 거에요. 어떻게 하면 미로 시작부터 끝까지 가는 명령을 줄일 수 있을까요? (종이를 나눠주며) 그렇게 해서 이 종이에 다시 순서도를 그려보세요. 여러분이 처음에 그렸던 순서도와 비교해서 살펴볼 거에요.”

조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자신의 팀으로 돌아가 논의하기 시작했다. 각자 아이디어가 좋다며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아이들은 조 교사에게 발표 전에 미리 연습해봐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꼬마 개발자들이 서로의 코드를 검토하고 재검토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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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조 교사는 “오늘은 6 모둠이 제일 잘했네. 20점 줄게요”라며 피드백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6 모둠이 어떻게 명령어를 줄였는지 보러 모여들었다. 그리고 자기 조의 결과와 비교했다.

언플러그드 교육을 하는 이유-“교육 현장이 그래요"

그런데 조 교사는 왜 언플러그드 교육을 하는 걸까. 그는 교육 현장의 한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교육 교재가 지역마다 다른데요, 부산은 2013년 부산광역시 교육 연구원에서 내놓은 ‘즐거운 컴퓨터’를 써요. 하지만 1, 2학년들용 교재엔 직접 PC,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는 내용이 없어요. 선생님들이 가르치다가 필요하면 쓰시죠. 그러다 보니 3학년 때 학교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쓰는데 곧바로 코딩을 가르치기는 힘든 거에요.”